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기억 Amateur Radio

오늘 웹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누군가의 글에 모르스코드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보게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까지 하다. 저거 한창 외울 때는 길에 가다가도 영문만 보이면 나도 모르게 "디다 다딧 다디딧 ..." 하고 중얼거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아마추어무선을 하려면 아마추어무선사라는 국가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게 3급부터 1급까지 있는데, 3급 전화 (3급은 전신과 전화로 구분) 자격증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르스코드를 송수신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급수가 올라갈 수록 점점 빠른 송수신 속도를 요구한다.

아마추어무선이 얼마나 재밌는 취미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생각이 날 때 마다 써보겠지만, 오늘은 일단 내가 처음 시작하게 된 얘기를 한 번 써보자.

내가 아마추어무선이란 걸 처음 알게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라디오와 모형이란 잡지를 구독해 보고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 햄 (아마추어무선사들의 애칭)들의 활동 소개와 아마추어무선은 어떻게 시작하는지, 무전기들은 어떤게 있는지 이런 설명이 나온 특집 기사가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왠진 모르겠지만 햄이란 것에 완전히 매료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 방에 앉아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 모를 미지의 사람과 교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요즘 말로 진짜 쿨 했다. 게다가 당시는 TV는 흑백으로 나오고 집 밖에 나가면 "반공방첩"이란 말이 동네 담벼락에도 써있던 시절이니 간첩이 아닌 내가 뭔가 간첩처럼 띠디디 거리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반골 기질이 있던 어린 내 성격을 마구 흥분시켰을 법하다.

어쨌든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기사 맨 끝에 적혀있던 "사단법인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이란 곳을 무조건 찾아가보기로 했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여의도 어느 상가 2층에 있던 연맹 사무실을 겨우겨우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눈 앞에는 까만색 무전기에서 칙칙하는 잡음과 함께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파 교신에서는 목소리를 전달할 때 SSB라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우리 귀에 익은 AM이나 FM과는 달리 처음 듣는 사람은 소리를 잘 알아듣기 어렵다).  무전기 앞에 앉아 있던 분이 마이크 버튼을 누르더니 "로져, 로져, QSL?" 하고 말한다. 그 옆의 다른 아저씨는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적어넣고 있다. 이 모든 광경이 내게는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나는 아마추어무선을 내 평생 취미로 삶고 살거야하는 결심을 해버렸다.

그러나 14살짜리 중1 학생에게 세상은 그리 만만한게 아니었다. 뒤쪽 소파에 앉아 계시던 한 아저씨가 "학생 어떻게 왔나?" 하며 신기한듯, 재밌다는듯 나를 불렀다. 나는 여차여차해서 아마추어무선을 하고 싶어 찾아왔노라고 말하고, "아저씨, 저 아저씨들 하는 거 같은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되요?"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우선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과 정부로부터 무선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해줬다. 무선국 허가를 받으려면 무전기를 사야 하는데, 아까봤던 무전기 (모델은 지금 기억이 안나는데 TS-520S 아니었을까)는 당시 돈으로 80만원쯤 한다는 것 (지금으로 말하면 한 천 몇 백 만원쯤의 느낌)과 그것 말고도 옥상에 안테나도 세워야 하는데, 혼자 세우긴 힘들 것이라는 등등등... 아무튼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니 앞으로 종종 나와 천천히 배워 보라는 요지였다.

'아, 이거 막막하구나. 부모님한테 무전기 80만원짜리 사달라고 하면 한 3일은 두들겨 맞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오락가락하면서도, 우선 맨 먼저 필요한 자격증이란 것은 돈드는게 아니니 저거부터 해보자라고 맘을 잡고 다시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자격증 따려면 뭐뭐 공부해야 해요?" 아저씨 왈, 전파법령, 무전기 회로 같은 것은 기본으로 알아야 하고, 거기에 통신영어 과목도 있고, 결정적으로 모르스코드를 외워서 치고 받아적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 요즘엔 다들 3급전화 자격을 따서 차에 무전기를 달고 뒤꽁무니에 안테나 세우고 다니는 것이 95%이상을 차지하고 그게 아마추어무선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3급전화는 거의 생각들을 안하고 최소 3급전신이나 2급을 봤던 것 같다. 3급전화 자격은 모르스코드, 영어 이런거 다 안봐도 되고, 심지어 요샌 연맹에서 교육만 받으면 대부분 과목은 면제된다]

'허걱, 모르스코드, 그거 간첩들이 하숙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하는 따다다닥 두들기는 그거 말하는거 아냐?' 법이야 외우면 되겠고, 회로야 뭐 그래도 AM 라디오 정도는 혼자 회로도 그리고 땜질해서 만들기도 했던 시절이니 겁나지 않았는데, 영어랑 모르스코드가 문제였다. 특히 모르스코드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저씨한테 다시, "아저씨... 그 자격증 없이는 뭐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나요?" 하고 물었다. 아저씨는 이제 정신 좀 차렸냐는 듯이 웃으시면서, 우선 연맹에 가입하면 준회원으로 SWL (Short Wave Listner) 번호라는 것을 주는데, 집에 단파 방송 잡히는 라디오 있으면 그걸로 남들 교신하는거 열심히 들으면서 어떻게 하나 잘 배우고, QSL 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거기에 SWL 번호를 적어 내가 들은 교신자들에게 보내면 답장을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괜찮은 생각이다 싶어 그 자리에서 준회원 (자격증이 없으면 무조건 준회원) 가입을 하고 아저씨가 손에 쥐어준 밴드플랜 (어느 어느 주파수에서 햄 교신이 이루어지는지 표시된 종이)과 몇가지 자료들을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마침 집에는 나랑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 오래된 Grundig 제품 라디오가 있었는데, 이 놈이 단파 방송이 잡혔다. 단파라고 하면 주파수가 1.6MHz 근방에서부터 약 30MHz 정도되는 범위이니 540KHz~1600KHz가 범위인 AM 방송보다는 주파수가 높고 88MHz~160MHz 정도 범위인 FM 방송보다는 훨씬 낮은 주파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우선 당시 막 오픈한 교보문고로 달려가 아마추어무선에 관한 책을 찾아봤다. 신기하게도 두어 권의 책이 있었다. 하나는 아마추어무선이란 것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써놓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안테나를 어떻게 만드나에 대한 책이었다. 뭐 거기 나온 안테나 대부분은 도저히 내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다이폴이란 구조가 길이는 안맞지만 대충 집에 굴러다니는 구리선가지고 만들어 볼만 했다. 이리저리 땜질해서 얼기설기 방 창문 밖으로 다이폴 비스무리하게 선을 처놓고 라디오에 연결한 뒤 전원을 켜봤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치익--"하는 잡음 뿐. 실망이 몰려오면서 맨 아래 밴드부터 천천히 다이알을 돌리면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귀울여봤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잡음에 뭍혀 잘은 안들렸지만 아주 조그맣게 "다디다디 다다디닷"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오오.. 잡힌다 잡혀!

그렇게 시작한 나의 SWL 생활은 중3이 되면서 고입 준비다 뭐다 해서 접게 되었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 95년이 되었다. 당시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2년차를 맞이하던 1월. 무슨 이유에선지 머리 뒷편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아마추어무선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이 참에 자격증도 따고 이 번엔 정식으로 무선국 허가도 내서 제대로 시작해보자.'  1, 2월을 법령 공부니 모르스코드 공부니 정신없이 보내고 2월 말, 드디어 아마추어무선사 1급 자격증을 따내고야 말았다. 처음 아마추어무선을 알고 10 여년 만에 꿈을 이룬 것이다.

95년에 나는 무선국을 개국하고 콜사인을 받아 처음 전파를 발사했고, 그 해 말 결혼해서 신혼 집으로 이사가면서 아파트 옥상에 4엘레멘트짜리 야기 안테나도 올렸다. 무전기는 Yaesu제 FT-1000MP와 내가 직접 만든 5W 출력의 QRP 송수신기 두 대를 썼다. 웹을 찾아보니 당시 내가 어디 올렸던 사진들이 있어 여기 다시 올린다. 정말 아련한 추억의 사진들이다.

95년 당시 나의 무선국 모습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 옥상에 안테나를 설치하고 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무선국 개국을 하면서 고생했던 얘기들, 또 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경험들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다.

덧글

  • Leonardo 2008/07/19 15:24 # 답글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이글루 검색하다가 들렀습니다.
    처음 CQ 소리를 들으셨을땐 정말 감동이셨겠어요.

    벤처키 BY-3는 정말 멋지군요. FT-1000MP도 멋지지만요 Hi
    ANT는 A4S인가요?
  • 무책 2008/07/22 07:15 # 답글

    안녕하세요, 레오나르도님.

    요즘도 햄 하시는 분을 만나니 너무 반갑네요.

    네, 저 안테나는 A4S가 맞습니다. 당시 미국의 한 우편주문 가게에서 주문해다가 조립했지요. 타워는 지금은 성함을 잊어버린 한 OM께서 도와주셨구요.

    95년에 신혼집 아파트 옥상에 세웠다가 99년에 이사간 집까지는 이고 다녔는데, 그 후 2001년인가 태풍에 엘레멘트가 하나 날아가고 2002년 늦깎이 유학을 가면서 완전 철거해서 이후 2004년 귀국한 뒤로 새로 이사온 집에는 아예 무선국 설치를 못하고 있는 신세랍니다.ㅎㅎ

    언젠가 애들도 다 크고 은퇴할 나이쯤 되면 다시 시작할 날이 있겠지 하고 있답니다.

    즐거운 햄 생활되세요~
  • 김현진 2010/04/21 09:44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
    6K5AAS OP 입니다 ^^ 반갑습니다 .... 고1때 따고 5년뒤 제차에 이동기지국을 설치하고 차사고로 ㅋㅋㅋ 기숙사에 고정국을세워 ㅋㅋ
    3단GP 안테나로 교신했던 기억이 납니다 ^^ .... 요즘 인터넷이다 휴대전화다 문자다해서 아마추어무선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사라지네요.. 대학 동아리는 문닫은지 이제 10년이 다되어 간답니다...
    여튼 반갑습니다 국장님 73
댓글 입력 영역